외부와 차단된 연구소. 그곳에서 당신은 어떤 로봇과 대화하며 그 로봇이 얼마나 인간에 가까운지 테스트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이 생각하기에 그 로봇은 당신에게 매력을 느끼는 듯하다. 당신 역시 그 로봇이 싫지만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곧 폐기 처분될 로봇은 당신에게 연구소에서 탈출시켜 달라 한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묵직한 SF 영화, 엑스마키나(Ex Machina)

엑스마키나(Ex Machina)는 세계 최고의 검색엔진 블루북(구글을 말하는 듯하다.)의 CEO이자 천재 프로그래머 네이든이 개발한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기반의 로봇 에이바에 대한 튜링 테스트를 블루북 직원 칼렙이 진행하며 시작된다. 칼렙은 에이바와 대화하며 에이바가 자신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생각했고 그 역시 에이바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곧 연구소에서 폐기될 에이바를 탈출시킬 계획을 세운다.


최근 개봉하는 대부분의 SF 영화들은 우주 이상을 배경으로 하는 광대한 스케일, 눈을 즐겁게 하는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그리고 숨 가쁘게 진행되는 스토리 중 하나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엑스마키나는 폐쇄된 연구소를 배경으로 컴퓨터 그래픽 역시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천천히, 하지만 묵직하게 이야기를 이끌고 나간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각거리를 던진다.


초점을 맞추기에 따라 엑스마키나의 주제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흐름 전체에서 계속해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인공지능을 테스트할 수 있을까?’이다.


인공지능(AI)을 테스트 할 수 있을까?

튜링 테스트는 컴퓨터가 사고(Thingking)할 수 있는지, 사고할 수 없는지(사고를 흉내 내는지)를 판별하는 테스트이다. 인간이 컴퓨터와 대화하며 상대가 컴퓨터인지 모른다면, 즉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무려 반세기 전에 제안된 테스트이나 아직까지도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인정받는 인공지능은 없다.(유진 구스트만은 엄밀히 말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아직 인공지능은 사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본래의 튜링 테스트는 인간이 컴퓨터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인공지능으로서의 사고 능력과는 무관한 시각적, 청각적 정보로 인간이 아니라는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칼렙은 로봇 모습의 에이바를, 정확히는 형태 자체는 인간과 같지만 얼굴을 제외한 다른 곳은 피부로 덮여 있지 않은 모습의 에이바를 보며 튜링 테스트를 진행한다.

이에 대해 칼렙이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네이든은 에이바의 인공지능의 수준은 매우 높아  튜링 테스트는 무조건 통과할 것이라며 칼렙에게 에이바가 로봇이라고 인지한 상태에서 테스트를 진행하라 한다.


즉 네이든은 에이바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이 확실한 수준에서도 인공지능으로서의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이 사고하는 능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사고하는 능력 이상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

영화에서는 위 두 가지를 모두 다루고 있다.


네이든과의 대화에서 칼렙이 이런 문제를 제기한다.

체스를 위해 프로그래밍 된 인공지능과 인간이 체스를 두면서 상대가 인간이라고 인지한다면 그 인공지능은 정말 사고할 수 있는 것인가?

다시 말해 인간과의 대화만을 위해 프로그래밍 된 인공지능이, 극단적으로 말하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프로그래밍 된 인공지능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면 그 인공지능은 정말  사고할 수 있는 것인가?

영화에서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 없다.


인공지능으로서의 능력

칼렙이 튜링 테스트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을 때, 네이든은 로봇인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에이바가 의식(Consciousness)이 있는지 확인하라 말한다. 즉 네이든은 인공지능은 사고능력뿐만 아니라 의식 역시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진짜 테스트가 무엇이었는지 밝혀진다. 바로 에이바가 칼렙을 이용해 탈출할 수 있는 지였다. 네이든은 탈출을 위해서는 자기인식(Self Awareness), 상상력(Imagination), 속일 수 있는 능력(Manipulation), 성의식(Sexuality), 공감능력(Empathy)가 필요한데 에이바가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며 외친다.

Now, if that ins’t ture AI, what the fuck is?

이처럼 네이든은 인공지능은 사고능력뿐 아니라 의식, 자기인식, 상상력 등을 갖춰야 한다 생각한다.(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영어 단어를 함께 표기했다.)


사실 말장난 같기는 하지만,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지능(Intelligence), 즉 사고능력만 갖추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에이바와 같이 자기인식, 상상력, 속일 수 있는 능력, 성의식, 공감능력까지 갖춘 인공지능은 더 인공지능이라고 부를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인공지능의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네이든의 실험 설계는 충격적이었지만 훌륭했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에이바의 탈출과 네이든의 죽음이었다. 칼렙의 크래킹 능력과 재치가 뛰어나다는 변수가 있었다고 해도 에이바는 그 변수를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했지만 네이든은 무시했고 그것은 각각 탈출과 죽음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즉 네이든은 실험 설계 내에서 에이바를 테스트하지 못한 것이다.


만약 진정한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우리가 그것을 테스트 할 수 있을까?



여담이지만, 에이바가 탈출에 성공한 후 칼렙의 존재를 무시한 것을 보면 실질적으로는 문제 해결력, 즉 사고하는 능력 이상을 갖지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에이바가 칼렙을 속이고 그에게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등의 행동이 앞에서 말한 여러 능력들이 있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에이바가 연구소에서 탈출해 교차로에 가고 싶어 하고 실제로 교차로에 가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빅 데이터의 분석과 수집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는 빅 데이터이다.


네이든은 블루북을 기반으로 에이바의 인공지능을 개발했다며 이런 말을 한다.

They thought that search engine were a map of what people thinking.

But actually they were a map of how people were thinking.

검색엔진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여주는 지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보여주는 지도라는 것이다.

영화 속 대사지만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극과 반응.

이와 같은 기본 단위들로부터 방향성이 있는 생각의 지도, 즉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보여주는 지도를 완성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검색어 입력이라는 자극에 대한 검색결과 출력이라는 검색엔진의 반응, 그리고 검색결과 출력이라니 자극에 대한 검색결과 선택이라는 사람의 반응

그리고 위의 자극과 반응의 단위는 검색엔진에서 무한히 수집할 수 있다.


지금까지 빅 데이터 분석은 거의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찾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생각의 지도에서 각 생각의 위치뿐만 아니라 각 생각 사이에 난 길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잠깐이지만 개인정보무단수집 문제도 제기된다.

네이든은 전 세계의 모든 스마트 폰 카메라를 해킹해 수집한 사람들의 표정 정보를 기반으로 에이바의 얼굴 표정을 구현한다고 말하며 통신사들도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기 때문에  묵인했다고 한다.

눈치 챘을지 모르겠지만 영화 시작 부분에서 웹캠이 칼렙의 얼굴을 인식하는 듯한 장면이 있다. 칼렙의 표정 역시 수집되었다는 것이다. 여러 모로 상당히 짜임새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게 한 장면이었다.


엑스마키나는 국내에서 청불 판정을 받았는데 이는 영화 후반부의 전라씬 때문으로 보인다. 에이바가 자신의 몸에 인공 피부를 붙이는 장면이기 때문에 오히려 섬뜩한 기분이 드는데 이 장면으로 청불 판정을 받았다는 이해하기 어렵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R 등급으로 개봉했다고 한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엑스마키나는 폐쇄된 연구소라는 제한된 배경에서 화려한 그래픽 없이 한 단계 한 단계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때문에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 있지만 정전이 일어날 때마다 밝혀지는 붉은 조명과 조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음악은 영화를 긴장감 있게 끌고 간다.


엑스마키나(Ex Machina)는 ‘기계로부터’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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